맨체스터 시티 축구 클럽 탄생
맨체스터 시티 축구 클럽(Manchester City Football Club)은 1880년 맨체스터 서부의 고튼(Gorton) 지역에 있는 세인트 마크스 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두 교구 위원인 윌리엄 비스토우와 토마스 굿비히어, 그리고 목사의 딸인 안나 코넬이 지역 조직 폭력배와 알코올 중독자들을 돕기 위해 축구 클럽을 창단한 것입니다. 안나는 모든 교구 주민들의 집을 방문해 축구 클럽 창단의 필요성을 알리며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교회의 크리켓 클럽은 이미 1875년에 창단되었지만, 겨울철에는 활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축구 클럽이 그 공백을 메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인트 마크스(웨스트 고튼)라는 이름의 축구 클럽이 탄생했습니다.
클럽의 첫 경기는 1880년 11월 13일에 매클스필드에서 온 교회 팀을 상대로 치러졌습니다. 1884년, 클럽은 고튼의 또 다른 축구 클럽인 고튼 애슬레틱과 합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두 클럽은 다시 분리되어 세인트 마크스는 고튼 AFC로, 고튼 애슬레틱은 웨스트 고튼 애슬레틱으로 나뉘었습니다. 1887년, 고튼 AFC는 프로로 전향하고 연고지를 맨체스터 동부의 아드윅(Ardwick)으로 옮기며 클럽 이름을 아드윅 AFC로 변경하고 홈 구장도 하이드 로드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1891년, 아드윅은 뉴턴 히스를 1-0으로 꺾고 맨체스터 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성과는 아드윅이 1891-92 시즌부터 풋볼 얼라이언스의 멤버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풋볼 얼라이언스는 1892년에 풋볼 리그와 통합되었고, 아드윅은 풋볼 리그 2부 리그의 창단 멤버가 되었습니다. 1893-94 시즌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되어 클럽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해졌고, 아드윅은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름을 변경하고 1894년 4월 16일 공식적으로 등록되었습니다. 1899년, 맨체스터 시티는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처음으로 1부 리그에 승격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FA컵 우승과 시련
1904년, 맨체스터 시티는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열린 FA컵 결승전에서 볼턴 원더러스를 1-0으로 꺾고 첫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리그에서도 2위를 기록하며 더블 우승의 기회를 놓쳤지만, 다음 시즌에는 불법 재정 자금 혐의를 받게 되었습니다. 1906년에는 주장 빌리 메레디스를 포함한 16명의 선수가 퇴출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팬들은 이 선수들이 대부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옮겨가 유나이티드의 첫 번째 성공기를 만들어준 것에 대해 크게 분노했습니다.
1920년, 하이드 로드에서 화재가 발생해 메인 스탠드가 파괴되었고, 1923년 맨체스터 시티는 메인 로드(Maine Road)로 홈 구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1926년, FA컵 결승에서 다시 볼턴 원더러스와 만났으나 0-1로 패배했습니다. 이후 맨체스터 시티는 리그에서 기복이 심한 플레이를 이어갔고, 결국 시즌 마지막 날 강등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1926-27 시즌에는 1부 리그 승격을 목전에 두고 포츠머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골 평균 차로 승격이 좌절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에 승격하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의 트로피 도전과 성공
1930년대 맨체스터 시티는 트로피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1932년 FA컵 준결승에서 아스널에게 탈락한 뒤, 1933년 결승에서도 에버턴에게 패했습니다. 그러나 1934년, 세 번째 도전 끝에 포츠머스를 꺾고 두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37년에는 첫 리그 우승을 달성했으나, 다음 시즌 최다 득점을 기록하고도 강등되는 아이러니를 겪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해 클럽의 도전은 잠시 멈추었고, 1946년 리그 재개 후 2부 리그 우승으로 다시 승격하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의 논란과 성공
1949년, 독일 골키퍼 버트 트라우트만을 영입하면서 큰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 낙하산 부대원 출신이었고, 전쟁 포로에서 석방된 후 잉글랜드에 정착해 있었습니다. 그의 영입은 많은 항의를 불러일으켰지만, 트라우트만은 뛰어난 실력으로 클럽의 성공에 기여했습니다. 1956년 FA컵 결승에서는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도 끝까지 경기를 뛰며 버밍엄 시티를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의 부침
1963년 강등을 당한 맨체스터 시티는 조지 포이저 감독 하에 하락세를 이어갔습니다. 최악의 순간은 1965년 스윈든 타운과의 홈 경기에서 1-2로 패배하며 8,015명의 최저 관중 기록을 세운 때였습니다. 그해 시즌이 끝나기 전에 포이저 감독이 사임하고, 조 머서가 새로운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머서는 애스턴 빌라에서 성공을 거둔 경험을 바탕으로 클럽을 재건하기 시작했고, 플리머스 아가일 감독이었던 말콤 앨리슨을 어시스턴트 코치로 영입했습니다.
머서와 앨리슨의 지도 아래 맨체스터 시티는 1965-66 시즌에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콜린 벨과 마이크 서머비를 영입했습니다. 1967-68 시즌에는 1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즌은 토트넘 핫스퍼와의 눈 덮인 경기인 "발레 온 아이스(The Ballet on Ice)"와 올드 트래퍼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3-1로 꺾은 맨체스터 더비로 유명합니다.
유럽 대회 우승과 리그 컵 우승
1969년, 맨체스터 시티는 세 번째 FA컵 우승을 달성했고, 1970년에는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 결승에서 폴란드의 구르닉 자브제를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같은 해 리그 컵에서도 우승하며 한 시즌에 유럽 대회와 국내 컵 대회를 동시에 우승한 첫 잉글랜드 축구 클럽이 되었습니다. 1971년, 조 머서가 단장직에 오르고 말콤 앨리슨이 감독에 임명되었지만, 클럽은 1972-73 시즌 도중 앨리슨의 사임과 함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시 찾아온 성공과 새로운 도전
토니 북이 선수 겸 감독으로 팀을 이끌며 1976년 리그 컵 우승을 차지하고, 1977년 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는 작은 성공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여러 차례의 강등과 승격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맨체스터 시티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어 리그와 유럽 대회에서 꾸준히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명문 클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는 초기의 어려움과 도전, 논란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 온 과정에서 얻은 값진 경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맨체스터 시티를 더욱 특별하고 강력한 클럽으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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